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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아시아 평화 운동가 초청 평화세미나
조회|2005
작성자 |전주YMCA
작성일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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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Ediger (미국인, 아시아 기독평화교육운동가)초청 평화세미나를  

12월 15일(금)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진행했습니다.

Max Ediger 미국 크리스쳔 피스메이커로서 지난 40여년간 아시아 민중 지도력,

특히 아시아평화학교를 개설하여 청년 지도력을 육성하는데 생애를 헌신해온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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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평화운동 현황과 평화지도력 육성

강사 : Max Ediger (미국인, 아시아 평화교육운동가) 통역: 정지석박사.(국경선평화학교)

 

< 세미나 진행 취지 소개>

평화운동 세미나를 주관한 전주YMCA는 지난 5년 동안 전북지역사회에서 청소년평화교육, 평화와 통일운동을 핵심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다. 평화교육은 비폭력 대화, 회복적 정의에 관한 세미나, 회복적써클, 평화감수성훈련 등을 지역사회지도자들에게 소개하고 진행하였다. 또한 평화와 통일운동은 평화통일포럼, 전라북도, 전주시 등에 평화통일교육조례안 제정운동, 평화순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직접평화행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에 지역사회지도자들에게 평화운동의 담론을 소개하고, 아시아지역의 평화운동, 청년 평화교육 등을 소개하고자 아시아 평화운동가인 Max Ediger를 초청하였다. 이 세미나는 평화교육과 평화통일운동의 정신적, 경험적 지혜를 전북지역 지도자들에게 아시아 차원에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였으며, 아시아 지역사회의 평화이슈와 교육의 중요성, 방법론, 아시아에서의 경험, 제언 등이 주요 담론으로 소개되었다.


< Max Ediger (이하 맥스 에디거) 소개>
맥스 에디거는 미국 크리스쳔 피스메이커로서 지난 35년간 아시아 민중 지도력, 특히 아시아 청년 지도력을 육성하는데 생애를 헌신해온 분이다. 맥스 에디거는 1946년에 태어나 현재 72세의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청소년 시기는 미국의 일반 청년들과 비슷하게 생활하였다. 베트남 전쟁시 징집되었으나 전쟁에 참여한 것을 거부하고, 베트남에 봉사를 떠났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패전 이후에도 베트남에 남아 청년들을 위한 평화운동을 지속했다. 이후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아시아 평화학교를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가난한 아시아 청년들을 평화, 인권, 정의, 생명의 관점에서 평화의 지도자로 육성하는데 온 생애를 바쳤다.

 

< Max Ediger 세미나 발제 내용 >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대하는 것은 처음이다. 나는 현재 캄보디아에서 지내고 있고, 태국에서 오래 살았다. 태국에서는 두손을 모으고 인사한다. 이는 나는 위험하지 않는 사람이다 라는 뜻이다.

베트남 전쟁기간에 징집을 거부하고, 베트남에서 사회봉사활동으로 대체 복무를 하면서 4년을 베트남에서 살았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에도 1년을 더 살았다.
1975년 봄. 미 대사관에서는 곧 베트남 공산군들이 들어오니 떠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와 3명의 미국인 친구들은 베트남에 머물렀다. ‘베트남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함께 살자.’ 그것이 현재 베트남의 어려운 청년들을 맡기로 한 한 사회봉사책임이고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베트콩들은 전쟁에 승리한 후 혁명군으로 들어왔는데 총을 들지 않고 들어왔다. 사람들이 무서워 할까봐 미리 스스로 조심하였다. 이에 당시 사이공의 시민들은 베트콩(공산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산군들에게 내가 용기를 내어 미국인이라 말하자,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3가지를 물었다. 첫째는 왜 공산화된 베트남에 남았고, 둘째는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느냐? 셋째는 돈있냐? 였다. 이에 난 너희들이 좋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머물렀고, 가족들은 걱정하겠지만 내 뜻을 전달했고, 돈은 없다고 했다. 이에 공산군들은 크게 웃었고, 혹시 미국인이라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에게 알려 달라고 말했다. 이에 난 크게 깨달았다. 더 이상 국가가 정한 ‘적과 친구’에 난 따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과 친구는’ 내 스스로 정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공산군들이 두려워 떠났다면, 현재 평화운동을 하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의심하면 적이 되고, 적도 이해하고자 하면 친구가 된다. 이 경험이 나에게 이렇게 평화운동을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난 현재 72세이다. 미국의 농가에서 자랐고 청소년시절은 미국의 일반청소년과 똑같지 지냈다. 그러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비를 내고, 돈버는 직업 등에 대해 모두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돈은 배우는 것이구나’라는 생각 끝에 학교를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베트남 전쟁 발발 후 베트남 전쟁의 참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신 좋은 일을 하기로 했다. 베트남을 떠난 후에는 아프리카 브론디에서 난민 돕기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런 경험들이 현재 평화, 정의를 추구하는 운동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게 청년들에게 평화 교육을 한다면, 직접 보게 하라! 그 곳에서 직접 느끼게 듣게 하라! 를 강조하고자 한다. 이런 관점은 내가 아시아평화학교를 운영하면서 갖게 된 원칙으로 너무 바쁘지 마라, 상대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앉아서 차분하게 들어라, 누군가를 변화시키려고 바쁘게 만들지 마라 ! 이다. 그럼 서로에게 평화가 온다.

평화는 하모니(Harmony)이다.
우리가 똑같을 필요는 없다. 똑같다면 지루하다. 평화는 조화에서 온다.
평화는 정의(justice)이다. 정의는 깨진 조화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화해하는 것, 깨진 조화를 새로 만드는 것, 그것이 평화이고 정의이다. 불의 속에서 살기 때문에 조화가 사라진다. 아시아평화학교에서는 불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가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불의는 깨진 모습에서 평화를 만드는 과정이다.

버어마 (미얀마)에서 있었던 일이다. 1988년대 버마 민주화 운동당시 버마 청년들이 총을 들고 군부독재와 싸우기를 원했다. 그리고 나에게 총을 들고 싸우는 일에 동의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난 청년들에게 불의를 먼저 이야기 하고자 했다. 청년들과 작은 그룹별로 불의에서 깨진 평화를 실체를 이야기 나누었다. 그리고 그 평화를 이루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로 토론하니, 그 평화가 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 청년들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그러면서 실천적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하면서 확산할 수 있었다. 불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모니의 형성이다.

젊은 그룹들이 총을 들고 혁명을 외칠 때, 난 ‘그래 좋다’ 그런데 혁명을 해서 무엇을 원하지 ? 하고 물었다. 그 물음에 청년들은 몇 달을 함께 불의를 변화하는 하모니의 과정을 경험하며 답했다. ‘ 불평하고, 파괴하는 것이 혁명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 혁명이다.’
평화는 만드는 것이다. 변화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나, 두 가지는 확인하여야 한다.
첫째는 남에게 변화를 주려고 바쁘게 움직이지 마라, 둘째는 ‘정의를 진행하라, 불의와 맞서 싸우려하지 마라‘ 이다.

싸우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내안에서 평화로워야 한다. 나만 정의가 아니다. 때론 딜레마이다. 강력한 적 앞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분노로 맞서기 보다 평화 그자체에 집중하여야 한다.

 

<질의 토론>
허종현 성공회 신부 : 1988년 버마 학생운동당시 청년들이 총을 달라고 했을 때 왜 안된다고 했는가 ?

맥스 에드거 : 난 총이 없어서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웃음), 난 청년들이 총을 들고 나가면 다 죽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화는 싸우는 것보다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구조악과 싸우는 것이 중요한가?

이래일 장로 : 한반도에서 가장 평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북미관계인데, 미국패권주의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극복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고 보는가?

맥스 에드거 : 우리가 말하는 불의는 큰 것이다. 바꾸어 나가는 것은 쉽지않다. 구조적인 것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대안을 찾아 하는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나는 단계적 접근법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운동은 큰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촛불운동에 감동했다. 작게 시작했지만, 한국 시민들 간에 신뢰를 만들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함께 가는 것을 선택했다. 예를 들면 지금 미국과 북한 관계에서 우리는 트럼프와 싸우는 것을 선택 할 것인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 난 내가 선택한다면 미국인을 데려다가 DMZ과 한국의 분단 위기상황을 보고주고, 스스로 보고 느끼게 하여 각성하게 만들 것이다.

최인규 목사( 노동복지센터이사장) : 평화적인 운동방식을 이해한다. 베트남에서 주로 무엇을 구체적으로 하였는가 ?

맥스에드거 : 베트남은 가난한 나라이다. 전쟁시기에는 개발원조는 의미가 없다. 만들면 부숴 놓는다. 난 메노나이트 교회를 다닌다. 미국에 메노나이트 교회 청년들에게 베트남에 오게 해서 그 실상을 보게 하고, 미국의 정책을 바꾸게 하였다. 베트남에서도 소수이지만 반전 운동 그룹이 있다. 그들과 함께 반전 평화운동을 하였다. 기독교인들은 기도하고 평화를 실천하여야 한다. 나는 이것이 제국을 변화시키는 힘이라 믿는다. 신념과 믿음은 실천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 땅에서 실천할 것인가 하는 주요 물음이며, 기도이다.

 

<Ham 이야기 >
Ham(햄)은 맥스에드거 제자로서 캄보디아 인이다. 햄은 세미나 과정에서 맥스에드거를 도와 아시아평화학교의 주요 교육 내용과 캄보디아의 역사적 상황을 보충 설명하였다.

더운 나라에서 한국에 와 너무 춥다 (웃음),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이 캄보디아 땅에서도 이루어 졌다. 그후 내전이 있었고, 크메르 정권하에 마오이즘 등, 다양한 이데오르기가 있었으며, 300만명이 죽었다. 크메르루즈는 지식인을 다 죽었으며, 못 배운 사람도 죽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 상처와 나쁜 기억이 내 삶에서 지배했다. 희망도 없이 자라가도 2012년 아시아 평화학교를 만났다. 아시아 평화학교에서는 사람의 변화 (인격체의 변화), 공동체의 변화( 국가, 아시아, 마을, 지구시민 등)을 지향한다. 3개월 과정으로 국가, 인종, 종교 등의 서로의 다른 점을 배우는 것이 공동의 정신이다. 그것을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성찰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지구시민사회의 평화적 관점에서 갈등지역을 방문하고, 갈등원인을 분석하고, 평화로 가는 길을 성찰한다. 그 성찰은 배움과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에 아시아 평화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네트워크화 해서 배운 사람들이 각 현장에 가서 평화운동을 지향한다. 현재 한국 사람은 와서 공부한 사람은 없다. 향후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 정리 : 조정현 전주YMCA 사무총장 )